SDF 다이어리

Ep.86

Ep.86나의 문어 선생님과 피터싱어

2022.01.05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하루! SBS D포럼이 전하는 SDF 다이어리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당분간 문어 먹기가 어렵다고도 전해 들었죠. 그러나. 지난 SDF 다이어리(Ep.85 연말에 이 콘텐츠 어떠세요?)에서도 추천 콘텐츠로 꼽은 터, 더는 안 볼 수 없었습니다.

큰 줄거리는 '인간과 문어의 정서적 교감', 우정에 대한 얘기입니다. '인간과 문어의 우정이라니….'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다이버인 크레이그 포스터가 고향인 남아프리카의 바닷속에서 한 문어를 만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1년 이상 매일 문어를 관찰한 크레이그 포스터.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안전한? 이라는 믿음이 생긴 걸까요. 문어가 팔을 뻗어 감독의 팔을 붙잡고 카메라도 탐색합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문어는 강아지나 고양이 정도의 지능으로 '길들이기'나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꽤 똑똑하고 집요한 전략가 문어. 타깃으로 삼은 게를 사냥할 때 피부 색과 몸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바위 틈에 숨었던 게가 방심하고 나오자, 찰나를 놓치지 않고 보자기처럼 몸을 펼쳐 게를 한 번에 덮치는 문어.

포식자인 파자마 상어를 만났을 때는 재빠르게 몸을 웅크려 바위 틈에 밀어 넣습니다. 그러나 결국 문어는 다리 한 쪽을 뜯기고 맙니다. 파자마 상어가 문어의 다리를 문 채 360도 몸을 회전해 뜯어낼 때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어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문어와의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전하려 애쓰지만 수시로 울먹이죠.

피터 싱어의 '왜 비건인가'도 '동물의 고통'에 대한 얘기입니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도 문어 다리가 뜯겨 나갈 때, 그 고통에 몰입해 괴로워하죠.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는 동물도 인간처럼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며, 따라서 동물을 인간의 도구로만 여겨 동물을 차별하거나 억압 착취하는 것은 종차별주의라고 비판합니다. 사실 서양의 근대 철학에서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보고, 인간이 동식물을 이용할 권리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24살의 피터 싱어가, 그러니까 무려 50년 전에 당시 상식에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피터 싱어 교수 스스로도 당시 자신의 주장이 사회에 이상하게 받아들여질만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정도로 파격적이었던 당시의 주장은 식사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20대 피터 싱어가 친구(옥스포드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리처드 케션)와 점심 식사로 스파케티를 먹으러 갔는데, 그 친구가 소스에 고기가 들었느냐, 고기가 들었으면 샐러드를 달라고 하더란 겁니다. 그 친구는 본인이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면서 "동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채식을한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이 도축되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전까지는 풀밭에서 평온한 삶을 사는 줄 알았던 피터 싱어. 현대 축산 방식을 알아 본 피터 싱어는 본격 '동물 해방'을 주창하게 됩니다.

SBS D포럼 2021에서 피터 싱어는 육류 없이도 충분히 영양섭취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첫 걸음으로 동물성 식품의 섭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피터 싱어교수가 모든 사람에 채식을 강요한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먹더라도, 동물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는 질문에 "입법 활동이나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서 "동물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는 정치 지도자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활동 덕분에 유럽 등지에서 화장품 개발 때 무분별한 동물 실험을 금지하는 법안 등이 마련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캘리포니아 같은 미국 내 몇몇 지역에서도 공장식 사육을 금지하는 곳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동물 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겁니다.
피터 싱어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라고 추천합니다. 20대의 피터 싱어가 처음 동물 해방채식을 이야기할 때만 해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함께 스파게티를 먹었던 친구와 그의 아내 등 6명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원한다면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죠. 실제 '태그니티(해시태그와 커뮤니티의 합성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취미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SNS를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출처:트렌드코리아2022) 피터 싱어는 인터넷에 가짜 뉴스도 있지만, 잘 걸러 낸다면 과거와 달리 소수 의견이라 할지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채식을 할 것인가?', '채식을 해야 하는가?' 여전히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며 의견이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무자비한 공장식 축산문제와 지속 가능한 문명에 대한 고민 차원에서 피터 싱어 교수의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혹시 새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계신다면, 피터 싱어의 메시지를 한번 더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꼭 채식이 아니더라도, 그가 자신의 소신을 50년간 쭉 이어온 힘과 노력, 지금 우리가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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