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다이어리

Ep.89

Ep.89올해는 글 한편 써보고 싶으시다고요?

2022.01.26

안녕하세요. SBS의 대표 지식 나눔 플랫폼, SBS D포럼에서 전해드리는 SDF 다이어리입니다.
여러분은 새해 어떤 다짐들을 하셨고, 조금씩 실천하고 계신가요? 최근 새해 소망, 나아가 인생 버킷리스트에 ‘글쓰기’를 말씀하시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스토리텔링과 글쓰기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온라인 수강생도 많아졌다고 하는데요. 글쓰기 열풍은 국내에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닙니다. 지난 1월 15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 시대, 비대면 사회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글쓰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무엇인가를 글로 써보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막막함과 두려움 사이에 계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글’로 나를 설명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글’은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우리를 한발 더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SDF다이어리에서는 글 공유 플랫폼 주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큰 화제를 모으며 데뷔한 작가죠,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을 쓴 정지음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작가님 반갑습니다! 먼저 SDF다이어리 구독자 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2021년 여름에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에세이를 내고 활동 중인 작가 정지음이라고 합니다. <젊은 ADHD의 슬픔>은 25살에 자기가 알고 보니 ADHD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였다는 것을 진단받은 성인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진단 후 달라진 삶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ADHD를 갖고 있는 나의 한계에 대해서 최대한 솔직하게 담아보려 노력한 에세이입니다.
작가님의 데뷔 과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은데요.
글 공유 플랫폼을 통해 작가 데뷔를 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스마트폰에 글을 쓰셨다고요?
사실 제가 브런치에서 (글 공유 플랫폼) 많은 주목을 받는 작가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좀 그 밥풀 같던 그 시절부터 들여다봐 주신 초기 독자분들에게 되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 떠다니는 그 수많은 데이터나 트래픽 같은 것을 수용하기만 하다가 발산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인생의 환기가 많이 되더라고요.
글을 쓰기 전에는 스마트폰 중독이 되게 심했어요. 하루에 13~14시간씩 만질 때도 많았는데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게 어떤 몰입이라기보다는 사실 스스로가 굉장히 분산되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렇게 약간 은은하게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느낌을 견디다 견디다 마침내 견딜 수 없게 됐을 때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중독에서 벗어나는 제일 쉬운 방법은 다른 중독으로 넘어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 중독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서 글을 선택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이게 ADHD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가끔씩 제가 보편 정서에서 벗어날 때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몰랐던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처음에는 그냥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몇 글자까지 써볼 수 있나를 알아보려고 글을 썼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인식도 없었어요.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었어요.
방금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게 되게 힘든 일이라고 말씀을 주셨잖아요? 저도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자기 자신은 자기한테는 어떻게 보면 최초의 자연스러움이잖아요? 사실 여기에는 어떤 가치 판단이 개입할 수가 없고, 그냥 나는 나인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살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 자꾸 인생에 개입을 하잖아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사실 내가 나를 본다고 해도 내 시선에는 이미 남들의 눈이 엄청 많이 실려 있는 상태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를 마주하는 것은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남들의 시선을 다 골라내는 일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이 부분 또한 양면적인 게 우리는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고 사는 것을 ‘사회화’라고 하잖아요.
나는 지금까지 조금 남다르게 태어나서 남들에게 맞추기 위해서 여기까지 인생을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나를 마주 대하기 위해 남들의 시선을 또 다 버리자니 약간 허망한 느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갖춘 사람만이 또 자기 인생에 남들을 초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고 그 필요한 과정이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와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방금 “조금 남다르게 태어나서, 남들에게 맞추기 위해서 인생을 달려왔다.”고 하셨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조금 남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얼마 전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의 질문은 “작가님이 생각하는 ‘평범’이란 뭔가요?”였는데요. 그때 “제 생각에 ‘평범’은 케이크 위에 있는 체리 같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게 장식이지만 누군가는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체리가 없다고 해서 케이크가 아닌 것도 아니고요. 특별하지만 어떻게 보면 또 의미 없고, 그렇게 양면적인 의미라고 생각해요.
‘평범’이 귀중해지거나, 하찮아지는 이유는 그 ‘평범’과 ‘다름’ 사이에 계급을 만드는 시선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어떻게 보면 이제는 내 접시에 체리가 있나, 없나를 아예 보지 않게 되는 사람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평범과 다름이 계급 없이 그냥 비슷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둘 다 가치가 있거나, 아니면 둘 다 가치가 없거나. 그 평범이라든지 정상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서는 마음이 되게 편해진 것 같아요.
글로 자기 자신의 삶을 설명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대우하는 방법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글을 만들기 위해 모니터 앞에서 되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되잖아요. 표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이런저런 고민이 들어가는 건데, 이렇게 바쁜 우리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나를 위해 그런 시간을 가져주는 일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건 내가 나한테 해줄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그런 나를 위해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서 무언가를 완성한다는 그 활동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나 꼭 한 번쯤은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온전히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지만, 글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시선이 타인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을 쓰면서 관점이 달라진 건가요?
책을 쓰면서 제가 살아온 길을 한 번 쭉 정리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당연히 자기 안으로 매몰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자전적 에세이니까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되게 자연스럽게 어떤 제가 가지고 있던 인식의 불균형 같은 게 좀 교정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복잡하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은 복잡할 것이고, 내가 이렇게 단순하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은 단순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남과 나 사이의 어떤 격차가 줄어들면서 좀 좁혀든 느낌이 있었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자기 연민이 자기 수용으로 바뀌고, 그걸 발판 삼아서 타인 수용까지 가게 된 경우 같아요. 이걸 작가로서나, 아니면 저라는 한 인간으로서나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천성적으로 사람을 계속 좋아하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그 호감이 호기심으로 발전되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사람이 궁금해지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이 어떤 대답을 내놔도 나는 판단하지 않겠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포괄적인 느낌의 애정이 됐는데, 그래서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되면서 좀 시선이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좌)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 / (우) 인터뷰 중인 정지음 작가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 있으세요?
사실 제가 코로나 발발 후에 데뷔한 작가라서 오프라인 행사는 거의 못 해봤어요. 웹으로 만나 뵙는 것도 감사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2022년으로 해가 바뀌면서 인상적이었던게 SNS에 올해(2021년)에 읽은 에세이 중 가장 좋았다거나, 자기 인생책 이라거나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되게 힘이 되더라고요. 이 작품이 생명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이요.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과 계속 대화하고 있다는 그렇게 생명력이 느껴지는 반응들이 되게 감사하고요. 그리고 또 너무 좋은 것은 ‘나는 ADHD는 아닌데, 이 책을 읽고 자식이나 애인, 남편, 아내, 부모님, 친구를 이해하게 됐다’는 말이 되게 좋았어요. 어떤 사이를 매개해주는 게 되어서 또 그분들의 삶이 조금씩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되게 뭉클하더라고요.

지금 세상을 대표하는 정서는 ‘고립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고립이 옳음으로 옮겨 갔다고 생각해요. 고립되어있는 상태가 옳은 게 된 거잖아요. 사람들에게 계속 혼자 있으라고 얘기를 하는 세상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혼자서는 완전할 수 없고 계속해서 소속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 필요한 위로가 연결감인 것 같아요. 어디에선가 모르는 작가가 내 얘기를 하고 있다. 내 감정도 어떤 글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인정이 되기도 하고, 내 이야기가 너무 내 것 만은 아닌, 그러니까 내 감정을 이 사회가 같이 어루만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드리고 싶어요.
작가님, 이미 SDF다이어리 구독하고 계신데요. 지난해 8월에 구독을 시작하면서 SNS에 공유해 주신 이후에 정말 많은 분들이 SDF다이어리 구독신청을 해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 그분들에게 인사 한번 하시겠어요?
일단은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추천했을 때 거기에 따라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고 지지해주신다는 의미라서 굉장히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믿어주셔서 제가 고른 것까지 믿어주시는 거니까, 정말 정말 감사했고요. 그런데 SDF다이어리 콘텐츠가 너무 좋으니까 약간 잘된 소개팅 주선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거리낄 게 없는? 그래서 저도 기분이 되게 좋았고, 구독을 하시면 얻어가시는 게 정말 많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많은 응원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정지음 작가는 지난해 수상소감문에서 “멋진 재능은 없지만 ‘작은 목소리’로써 기능하기 시작했어요.”라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요. SDF2021 <5천만의 소리, 지휘자를 찾습니다>를 통해 각각 고유의 소리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찾는 여정을 이어온 SBS D포럼이기에 정지음 작가의 ‘작은 목소리’라는 표현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정 작가는 ‘작은 목소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수상소감문을 쓸 때는 책이 없었어요. 아직 초고도 안 나온 상태라 책이 이렇게 잘 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라고 한 것도 있는데요. 😉 정말 감사하게도 책은 제 생각보다 훨씬 멀리 갔어요. (7쇄까지 찍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 책이 앞으로 얼마나 팔리든, 작은 목소리로 남아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저라는 소수가 그 질환을 대표하는 마이크를 쥐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질환은, 특히 이렇게까지 흔한 질환은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저 하나가 큰 목소리를 가지는 일이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어떤 작은 목소리로 남고 싶고,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다면 다른 ADHD 선생님들한테 말을 거는 목소리로서 기능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목소리로, 계속 작았으면 좋겠지 목소리가 커지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오늘 SDF다이어리, 어떠셨나요? 독자에게 연결감을 드리고, 작은 목소리로서 기능하고 싶다는 정지음 작가의 말이, 좋은 콘텐츠로써 더 나은 미래를 여는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SDF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SDF다이어리는 2월 9일 수요일,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목소리를 찾아 돌아오겠습니다. 편안하고 건강한 연휴 보내십시오. SDF다이어리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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