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금 ‘놓치지 말아야 할 화두'와 '새로운 관점'을 공유하는 SDF 다이어리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한 각 분야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술의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는 감독이 있습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라 세계적 관심을 모은 작품이죠. <오페라>를 만든 에릭오 감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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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 , UCLA 영화과 석사 학위를 마치고 2010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합류한 에릭오 감독은 픽사 (PIXAR)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며 <도리를 찾아서 >, <인사이드 아웃 >, <몬스터 대학교 > 등 여러 유명 작품에 참여했는데요 .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기 위해 2016년 10월 , 픽사를 퇴사했습니다 . 이후 기존 틀에 갇히지 않는 유연함으로 창의성 높은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 픽사 재직 시절 , SDF2015에서 <삶을 표현하는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 지난 31일, SBS D포럼팀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에릭오 감독을 화상으로 만나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질문은 무엇인지 예술의 관점으로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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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셨던 것,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이후에 더 많이 바빠지셨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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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행히 바쁘게, 굉장히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데요. 아카데미 시상식 전부터 이어오고 있던 작품들도 꾸준히 진행하면서 오스카 전후로 새롭게 온 기회들이나 새로운 작품들도 열심히 만들고 있고요. 그런 중에 뉴욕에서 <나무>라는 신작을 발표를 하게 돼서, 바쁘지만 기분 좋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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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처럼 한글 제목을 그대로 소리 나는 대로 따온 작품인데요. <오페라>는 제가 사회에 시선을 던진, 세상 돌아가는 것을 관찰하는 작품이었다면 <나무>는 훨씬 자전적 성향이 강한 작품입니다. 할아버지께서 10년 전 쯤에 돌아가셨는데요. 그때 제가 삶을 성찰하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썼던 짧은 스토리가 있었는데 그것을 꾸준히 안고 있다가 요즘 되어서야 조금 용기가 생기고, 좋은 기회도 얻게 되어서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 한 사람이 탄생하면서부터 마지막 여정을 이어가는 순간까지 한 사람의 삶을 훑는 VR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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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SDF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SDF2015 무대는 어떻게 기억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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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너무 어린아이 같았죠. 굉장히 긴장하면서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너무 좋았어요. 데뷔 무대라고 하면 조금 거창하지만, 그렇게 봐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저 스스로에게도 성장을 안겨줬던 경험이에요. 제 생각과 아이디어를 여러분들에게 공유하는 자리였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또 함께 무대에 올랐던 연사 분들과 소통하면서 정말 너무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웠던 계기가 됐었거든요. 6년 전의 시간은 정말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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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페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요. 작품을 보면 기존에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캐릭터, 혹은 스토리 중심의 애니메이션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떻게 기획?구상하게 되셨나요? <오페라>라는 제목도 상당히 흥미롭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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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SDF무대에 올랐을 때, 작품을 접하는 태도나 임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던 것 같아요. ‘호기심’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제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아이디어와 모티브를 얻는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페라>라는 작품의 시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페라>는 4년 정도 제작 기간이 걸렸는데요. 4년 전, 그러니까 2017년이죠. 그때 제가 이 작품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됐어요. 문제가 없었던 시대는 없겠지만 그때가 참 사회 구조적으로 참 다양한 문제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대선이 치러지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전 대통령이 탄핵 되는 그런 사회 분위기였어요. 그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부정적 감정과 혼돈의 과정들을 겪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서 영감이 딱 온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이 상황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구현했을 때, 저를 포함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를 움직여 나가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오페라>를 만들게 됐습니다. <오페라>라는 제목은 함께 작업한 팀원들과 같이 고민해서 나왔는데요. 여러 후보군이 있었지만 <오페라>로 정하게 된 큰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로 <오페라>라는 어원 자체가, 일반적으로 뮤지컬이나 음악적인 것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지만 ‘오페라’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그 안에 사회, 노동, 사회 구조라는 개념을 다 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페라’라는 그 제목이야말로 이 작품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느꼈어요. 두 번째로는 저는 이 작품이 굉장히 음악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음악에 굉장히 심혈을 많이 기울였고요. 굉장히 큰 서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그것을 움직여야 하는 큰 역할을 하는 게 음악적 요소였거든요. 삶 자체를 묘사하는 사운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심코 들으면 와글와글하는 소리밖에 안 들리지만, 한군데에 초점을 두고 보면 “아 이 소리는 여기에서 나고 있었구나.”라는 게 보이는 거죠. 사회도 그렇잖아요. ‘소리’들은 늘 있는데, 거기에 어떻게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가 안 들릴 수도 있고,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소리’에 대한 고민을 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더불어 이 작품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역할의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 같았고 한편의 오페라를 보는 그 감정 자체를 보여주기에 <오페라>라는 제목이 더할 나위 없다고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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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양국의 정치적인 사건이 <오페라>의 출발점이었던 거네요? 정치, 그리고 리더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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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티브는 그랬지만, 그건 정말 모티브인 것 같아요. 영감을 주었을 뿐이죠. 시대를 초월한 작품 만들고 싶었어요. 전쟁이 벌어지고, 진화하고, 사회가 붕괴되고 또 그 안에서 수많은 갈등이 벌어지고요. 지난 세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해서 ‘이게 답이다.’ 라고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우도, 좌도,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다 사실은 서로에게 봤을 때는 오답이 정답이고 그렇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그 구조 자체를 보여준 것이죠. 리더가 저지른 어떤 실수나 그릇된 선택으로 사회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고, 또 사회 안에서 그걸 개선하려고 발버둥 쳐가고, 또 새로운 리더가 선출되어서 올라가지만 똑같은 일들이 또 반복되고, 그런 구조 자체를 그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오페라>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구역을 나누면 총 2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렇다고 24개의 이야기만이 아닌 게, 그 이야기들이 묶여서 또 새로운 이야기가 파생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사연들이 작품 안에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것을 가져가느냐는 정말 사실 관객들의 몫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이 ‘희망은 이런 거야!’라고 교훈적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이 안에서 ‘그래,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고 처한 상황이라면, 악순환일 수 있는 이런 고리를 어떻게 끊어서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우리가 후세대에 어떤 세상을,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할까?’라는 고민을 해서 스스로 희망의 메시지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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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서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이야기 하셨는데요.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화두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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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만들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된 부분이기도 한데요. 요즘 두 가지가 참 제 마음을 많이 아프게 만드는데 하나는 인종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어요. 특히 작년에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흑인 인권 운동이 굉장히 거세게 일어났었고, 올해는 아시안 hate crimes(증오 범죄)이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동양인들에 대한 탄압이나 관련한 문제가 큰 사회 문제로 미국에서 조명되고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저도 스스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막 떠오르더라고요. 이게 참 무서운 게 ‘이게 인종 차별이야.’라고 해서 인종 차별인 것은 아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던, 주눅 들어서 했던 행동들,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잖아!’라고 뒤늦게 떠오르는 것들도 있고요. 우리의 무의식 속에, 막 뼈저리게 남아 있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잖아요. 오스카도 마찬가지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동양인, 유색 인종 아티스트 감독들에 대한 기회를 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점점 만들어지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많이 주목받고 있잖아요. 지금 기회가 딱 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살려가야 할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동양인으로서 해야 되는 역할이 있다는 책임감을 좀 느끼기도 하고요. 오스카에서도 애니메이션 후보로서 유일한 동양인이었어요. 오스카 후보가 되는 과정이 굉장히 치열해요. 이 세상에 나온 수많은 작품 중에서 처음에 (후보작이) 약 90개로 추려져요. 그리고 90개에서 10개로, 10개에서 5개로 추려지는 올림픽, 월드컵 같은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 중에 한 10개가 추려지면서부터는 동양인 작품으로는 <오페라>가 유일한 거예요. 한국인을 떠나서. 그러니까 막상 오스카 시상식에 갔을 때도 동양인이 너무 없는 거예요. 이건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인데, 저랑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동양인이 스티븐 연 배우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초반에 어떤 스크립터가 저에게 스티븐 연이냐고 물었어요. 저는 그걸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게, 입을 좀 가리고 있었고 너무 동양인이 없다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또 약간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도 했고요. 하하. 그런데 오히려 미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농담이지만 웃지도 못하더라고요. 굉장한 실례라고요. 아무튼 그 정도로 동양인이 없었던 상황에서 그때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더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두 번째로 관심을 갖고 있는 화두는 자연 문제인 것 같아요. 자연이 파괴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요즘에는 조금만 그 생각을 하면서 둘러보면 너무 우울한 거예요. ‘정말 우리 이렇게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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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페라> 국내전시도 예정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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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은 오스카 전부터 <오페라>를 전시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오스카라는 좋은, 단비 같은 소식이 있으면서 힘을 받아서, 이제 준비하는 시점이 됐는데요. 부디 저도 올해 안이었으면 좋겠는데 좀 멋진 모습으로 <오페라>라는 작품을 국내에 계신 분들도 접하실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지금은 이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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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오 감독은 이번 오스카를 기점으로 새로운 챕터가 열린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더불어 “예술의 역할을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과학기술을 포함해 세상의 수많은 산업들이 세상을 나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움직이고 있듯 예술도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미미하고 부족하지만 늘 그런 고민을 해보려고 노력한다.”고 이야기 했는데요. 여러분은 요즘 어떤 고민과 시도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고 계신가요? SDF다이어리는 다음 주, 미래를 여는 새로운 질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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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 했던 에릭오 감독과 SBS D포럼의 인터뷰 영상은 SDF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됩니다. 오늘 SDF다이어리에서는 다 담지 못한 오스카 시상식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feat. 윤여정) 들려드립니다. 구독, 알람 신청하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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