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다이어리

Ep.99

2022.04.20

Ep.99우리 가족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인사이트 SDF 다이어리입니다. 벌써 4월도 마무리돼 갑니다. 시간 정말 빠르죠?^^; 요즘 SBS 미래팀은 올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화두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11월에 개최되는 SBS D포럼의 주제를 선정하는 일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사진 : 영화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인 최인철 교수님은 좁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코로나 시기,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최소 규모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며 지냈는데, 막상 겪어 보니 만족도가 높았다는 겁니다. 드라마로 시작해 영화까지 제작됐던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주인공인 네 친구 캐리, 사만다, 샬롯, 미란다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처럼 진짜 관계에 집중하고, 이런 커뮤니티가 있느냐가 개인의 행복을 가늠하는데 더욱 중요해진다는 얘기입니다.


이너 서클에 집중하는 경향이 더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작은 그룹 단위로 단절되는 현상을 어떻게 연결하고 연대할 것인가는 과제로 남게 되겠죠. 그럼에도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오롯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진짜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SBS 미래팀이 바뀌는 ‘관계’에 대해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접한 백지선 작가의 책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도 ‘새로운 가족’, ‘관계’에 대한 얘기입니다. 백 작가는 비혼으로 두 딸을 입양해 키우는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결혼이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족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꼭 혈연이 아니어도 서로 돌보고, 지지할 수 있는 관계야 말로 진정한 가족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오랜 기간 단절돼 살아야 했던 시기, 아마도 위로 되고 의지가 되는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기 시작하는 요즘 여러분은 어떤 관계에 더 집중하고 관심을 두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이 함께 하고 싶은 미래의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요? SBS 미래팀이 백지선 작가를 만나 그의 가족과 삶의 대한 이야기를 ‘관계’를 중심으로 들어봤습니다.

사진 설명 : 백지선 작가와 두 딸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 백 작가의 책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에 삽입된 사진들인데, 두 딸은 자신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책에 반영된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비혼으로 두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 백지선이라고 합니다. 저는 20년 동안 출판 편집자로 일했고, 최근에 출판사를 열면서 책을 함께 내게 됐어요.

Q. 비혼이어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군요.

2006년 말에 <입양특례법>이 개정이 됐어요. 이전에는 아이를 입양할 부모의 조건에 결혼 중일 것으로 명시돼 있었는데, 그 조항이 삭제되면서 비혼인도 입양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0년에 첫째 딸을, 2013년에 둘째 딸을 입양했고요. 벌써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됐네요. ^^

사진 설명 : 백지선 작가의 여동생과 조카, 두 딸과 촬영한 제주도 여행 사진. 백 작가는 어머니와 언니, 오빠 등과 협력해 입양한 두 딸을 양육하고 있다.

Q. 그동안의 경험을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에 담으신 것 같은데,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만족할 만한 ‘관계’를 통해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누구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말고, 가장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기록하게 됐고, 아이들이 이어서 자신들의 역사를 써 내려가겠죠.

Q. 비혼으로 두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녹록하지 않겠다 싶기도 한데,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우선, 혈연에 대한 집착이 아예 없어요.🙂 더 근원적으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 때문에 불행했던 우리 가족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죠. 가족 구성원으로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폭력까지 휘둘렀던 아버지, ‘아버지만 없다면 엄마와 언니, 오빠, 여동생으로 구성된 가족은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옛날 분인 엄마는 이혼도 하지 않았죠. 책에도 썼지만 결혼의 리스크가 그만큼 헤지 하기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비혼의 삶을 선택했어요. 다만, 서로 돌봄과 위로가 되는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보살핌이 필요한 보호시설 아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결혼은 하지 말고 입양을 해서 가족을 꾸리자는 결정을 하게 된 거예요.

Q. 요즘은 비혼에 대한 관심도 꽤 높은데요.

젊은 친구들도 결혼 제도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죠. 다만, 결혼 제도가 불합리하니까 '결혼 안 해'하고 끝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더라도 가족은 필요하거든요. 인간이란 서로 보살펴주면서 사는 존재고, 가족을 통해서 그 돌봄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녀 결합으로 만드는 가족이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면 '대안가족'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돌봄공동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젊었을 때부터 차곡차곡 그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Q. 그렇게 보면 작가님의 가족, 돌봄공동체는 아이들과 작가님의 어린 시절 가족이네요.

네 씁쓸하지만 아빠를 제외한 가족과 우리 아이들인 거죠. 아버지는 결혼만 했을 뿐 가족을 돌보지 않았죠. 오히려 상처만 주고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어요. 과연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문이 항상 있었어요. 안타깝지만 아버지를 제외한 두 아이와 엄마, 언니, 오빠, 여동생이 제게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입니다. 이 우리 가족이 없었다면 비혼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애초에 입양도 불가능했겠죠. 앞으로도 가족을 돌봄 공동체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서로 보살피고, 지지해 주며 살아야죠.

사진 설명 : 백지선 작가의 돌 사진에는 아버지가 없다. 언니, 엄마와 셋이 단출하게 촬영한 단 한장의 돌 사진. 돌쟁이 백 작가는 남아 한복을 입고 있다. 아들이길 바랐던 그의 부모의 선택이었다.

Q. 책에서도 '돌봄 공동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경험했듯이 국가의 복지 제도를 아무리 강화한다고 해도 돌봄 사각지대를 없앨 수는 없어요. 결국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돌봄을 나누고 살아가야 하는 거죠.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돌보는 돌봄 주체로서 살고, 나이 들어서는 당당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돌봄 공동체가 저처럼 입양을 통해 구성한 가족일 수도 있고, 영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처럼 친구들이 될 수도 있어요.

Q. 비혼으로 새로운 공동체에서 자라는 것에 대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 나눠 보셨나요? 어찌 보면 엄마의 선택으로 아이들이 조금은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비혼 입양 가정에 대한 편견을 체감한 적이 있느냐고 많이 묻곤 하는데, 사실 그 질문이 필요한지 의문이 들어요. 요즘엔 비혼이나 입양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끼거든요. 저희 딸들도 본인이 입양됐고, 할머니와 엄마, 이모들과 삼촌이 한 가족이라는 사실에 대해 수업시간에 발표를 할 정도로 거리낌이 없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이 점은 프라이버시니까 굳이 공개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도,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주제로 한 학교 수업에서 ‘비혼 입양 가정’이라고 손을 들고 얘기했더라고요. 어찌 보면 우리 다음 세대에는 이런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여전히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등에 대하 이야기들이 나오는 건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다양한 변수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여건에 따른 차별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볼게요. 세계적인 부자인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의 아이들이 한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불쌍하다고 생각할까요? 저는 아닐 것 같아요. 결국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나 입양, 비혼에 대한 편견이라기보다 가난에 대한 차별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그런 시각에서 우리나라에서 한부모 가정이나 미혼모 가정이 차별이나 편견을 경험한다면, 경제적 자립이 쉽지 않은 토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아요.

사진 설명 : 백지선 작가와 SBS 미래팀 채희선 기자는 이날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하는 날 백 작가의 요구 사항은 딱 하나였다. 인터뷰 장소가 '홍대역에서 가까울 것'. 인터뷰를 마친 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장소를 요청했던 것이다.

Q. 새로운 가족에 대한 상상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비혼이나 새로운 형태의 돌봄 공동체에 대한 관심에 대해 어떻게 느끼세요? 더 높아지고 있는 것 같은가요?

특히 젊은 세대들은 결혼에 대해 남녀 모두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여전히 육아나 가사의 부담이 여성에게 가중되기 때문에 교육 많이 받은 젊은 여성들일수록 결혼과 출산이 ‘불공정’하다며 기피하게 되는 거죠. 아니면 이런 ‘손해’를 보상받을 만한 경제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남성을 결혼 상대를 고르든지요.


남성 입장에서도 상당히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죠. 남자 혼자 벌어서 윤택하게 가정을 꾸리기가 쉽나요? 그런 고액의 수입을 담보하는 직업은 극소수입니다. 남성들도 결혼은 부담이라고 주장할 수 있죠. 결국 이렇게 서로 피해 의식이 쌓이다 보니 젠더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Q. 그래도 예전보다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인식의 문제를 많이 얘기하는데, 근본적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근로자 등 불안정한 직종에 근무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이 상황에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렸고, 임신과 출산을 했을 때 돌봄이 불가하다면 과연 누가 일을 그만두게 될까요? 가정 경제를 생각할 때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이른바 이류 노동자가 되는 반면 남성이 상대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 가능성이 높다면 여성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결국은 개인의 성평등 의식이 높아진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거죠.

Q.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 볼게요. 만약 작가님이 결혼을 한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건 일까요?

맞벌이가 핵심이라고 봐요. 생산 가능한 남녀 모두가 육아도 일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그걸 실현하는 상상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딩크족이거나 아이를 한 명만 낳는 경우가 많죠.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기에 객관적으로 적합한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임신과 출산으로 맞벌이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 등 다양한 공약들이 제시돼 왔지만, 이 제도를 여성만 쓰게 된다면 결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이류 노동력이 되겠죠.

Q. 올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무엇인지 저희 SBS 미래팀도 한참 논의중인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올해 가장 중요한 화두는 무엇일까요?

‘돌봄 공백’입니다. 오늘은 육아를 중심으로 돌봄 얘기를 나눴지만 노인들도 돌봄이 필요하죠.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격리되고 단절됐던 기간에 모두가 겪었던 돌봄 공백에 대한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복지 정책 같은 시스템도 보완이 돼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동체의 회복’인 것 같아요.


성인이 될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돌봄을 받았기 때문이죠. 남녀 구분 없이 젊었을 때는 일을 하면서 돌봄도 주체로서 모두 참여하고, 늙어서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의 복원이 정말 중요한 과제죠. 돌봄을 여성이든 노인이든 국가 시스템이든 한쪽에만 전가하면 결국은 아무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는 돌봄 공동체의 회복, 그 중요한 논의가 시작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바타’ 개념을 처음으로 창안한 SF작가 닐 스티븐슨이 지난해 SBS D포럼에서 했던 얘기입니다. 가상 현실의 개념을 처음 상상해 낸 닐 스티븐슨이 강조했던 메시지가 역설적으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에서 주변 사람을 더 배려하라는 것’이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백지선 작가와의 만남은 과연 나는 ‘돌봄의 주체’라는 ‘책임’을 인식하고 살아왔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해 줬습니다. ‘배려’나 ‘봉사’의 차원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하는 ‘책임으로써의 돌봄’, 아마도 그 시작은 단절된 가족, 파편화된 공동체 안에서의 다양한 형태의 ‘관계’의 회복과 새로운 연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닐 스티븐슨 작가의 말처럼 나는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SNS 속 피상적 관계에만 몰입해 왔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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