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9월 초 추석을 앞두고 초강력 태풍이 강타해 마음이 편치 않은 날들입니다. 다들 별일 없으신가요?
코로나도 그렇고 전에 없던 폭우, 태풍 등 기후 현상도 그렇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위기의 징조까지, 같이 대처해도 쉽지 않은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우리, 이 위기도 잘 이겨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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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에 따르면 약 20만년에서 30만 년 전 사이 대부분의 기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사람 종과 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10만 년 전쯤, 최후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인류가 어느 종인지 내기를 걸었다면 호모 사피엔스보다는 석기를 최초로 능숙하게 사용한 호모 에렉투스가 가능성이 더 높게 점쳐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7만5천 년 전으로 가면 승자는 아마도 빙하 시대 추위에 강했던 네안데르탈인이 꼽혔을 것이고요.
하지만 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만이 더 복잡하고 정교한 투창기를 만들어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고 무기한 여행을 계획하며 수평선 너머를 상상하면서, 문화와 기술이 다른 종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우월하게 도약했습니다. 다른 사람 종은 멸종했지만 호모 사피엔스만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1]
과학자들은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 바로 ‘다정함’ 때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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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음/이민아 옮김/박한선 감수/<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22~29p, 디플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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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미래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갈라지고, 혐오하고, 서로 불신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시대를 맞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브라이언 헤어 듀크대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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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 안녕하세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하셨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다윈의 ‘적자생존’ 개념과 대치되는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는 약육강식, 강자가 살아남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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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2]'의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크고 강한 알파 인간이나 동물, 그룹이 승자가 되어 전체를 지배한다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적자가 크고 강할 뿐 아니라 더 도덕적이고 더 우세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윈의 생각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3]
진화의 진실은 종이든, 생물체이든, 개인이든 가장 성공적인 개체는 거의 예외없이 ‘다정함’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됐습니다. 진화를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종류의 친화력이 새로운 종류의 협력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종이 엄청나게 번창하게 된 것입니다. 생존 게임의 승자는 '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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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는다는 과학적 용어
[3] "'적자 생존’은 원래 다윈이 고안한 표현도 아니다.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의 작품인데 <종의 기원>은 물론 다윈의 다른 책에서도 다윈은 생존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의 후예들이 오히려 그를 좁고 단순한 틀 안에 가둔 것이다." (최재천,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추천의 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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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정함’을 언급하시면서 ‘새로운 종류의 친화력’이라는 말을 쓰셨는데 무슨 말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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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남극대륙에서 사는 척추동물 가운데 황제펭귄이라고 있습니다. 황제펭귄만이 우리 지구에서 유일하게 화석연료 없이 남극대륙의 차가운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종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정함’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친화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겨울 내내 낯선 펭귄과 꼭 붙어서 수 백 마리, 수 천 마리가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버텨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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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례로 ‘청소놀래기’라는 어류도 있습니다. 다른 물고기의 입 안을 청소하는 어류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무 물고기의 입 안을 청소해주는게 아니라 포식성 어류의 입 안만 청소합니다.
다른 물고기들이 포식성 어류를 보고 도망갈 때 청소놀래기는 오히려 그 포식성 물고기쪽으로 헤엄쳐 가서 오히려 그들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하지만 특유의 다정함을 발휘해 이 포식 어류의 입안을 청소해주는 협력자가 되면서, 다른 물고기는 다 잡아먹는 포식성 물고기도 청소놀래기는 잡아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청소놀래기에게 포식성 물고기가 먹이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 결과 청소놀래기종은 다른 어류보다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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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헤어 교수는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친화력인 ‘다정함’은 자기가축화[4]의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종이 ‘다정함’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은 아니지만 개, 보노보, 인간 등의 예를 보면 확실히 ‘다정함’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한 종들이 더 번성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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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정 종이 스스로 가축화 되는 현상을 의미하며 대개 공격성이 줄어들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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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보면 자연선택적으로 ‘다정함’을 선택한 종들이 생존에 더 유리하게 됐다는 결과들이 많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유전학적으로도 더 빨리 성장하고 자제력도 더 크고 외모도 친근하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개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요. 우리는 개를 사람이 길들였던 것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이 길들인 게 아닙니다. 늑대 가운데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서 친화력을 보인 개체들이 종으로서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자연선택적으로 개로 진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선택한 게 아니라 늑대가 인간를 선택한 것입니다.
보노보에서도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는데요. 인류의 자매종으로 알려진 침팬지와 보노보 가운데 보노보가 훨씬 포용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노보는 강한 수컷이 공격성을 보이면 암컷들이 서로 연대해 보호합니다. 보노보 사이에서는 공격성이 장점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진화했다 보니 보노보는 유일하게 서로 살인을 하지 않는 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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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로라 야 보노보 보호구역 내에서 이뤄진 실험 연구 | Bonobos Share Food @Cell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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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보노보들은 낯선 보노보를 봐도 두려워하기보다는 반가워하고 실제 보노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보노보는 음식이 있을 경우 혼자 먹기보다는 나눠먹기를 좋아하고 아는 보노보와 모르는 보노보가 있을 때는 오히려 모르는 보노보랑 음식을 나눠먹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이치로 인간의 경우도 호모 사피언스가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낯선 사람이라도 같은 그룹이라고 느끼며 다정하게 대함으로써 협력의 네트워크를 넓힌 게 생존에 유리하게 된 것인데요. 그 결과 더 많은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인류는 최상으로 문명화 되고 최고조로 사회화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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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게 우리는 다정해지는 방식으로 진화했고 덕분에 더 협력한 결과 생존하게 됐다면 지금은 왜 이런가요? 우리 왜 이렇게 갈라지고 서로 혐오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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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는 멸종한 다른 종보다 다정했다는 것이고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쉽게 연대할 수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마치 가족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죠. 그 어떤 종도 지구에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종은 사람 밖에 없습니다. 낯선 사람과 그렇게 빨리, 깊게 연대할 수 있는 경우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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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정함’의 역설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인간은 가장 친절한, 다정한 종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장 잔인한 종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 그룹에 대해 깊게 연대하고 공유하는 만큼, 공격을 받았다고 느끼면 엄청나게 폭력적이 되고 자신을 위협하는 자들에 대해 잔인해집니다. 인간은 가장 다정하지만 가장 잔인할 수 있는 종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다정함을 더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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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SBS D포럼의 주제는 “다시 쓰는 민주주의”인데요. 다정함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하실 수 있는 것도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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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민주적입니다. 농경시대 이전의 인류의 시스템을 보면 굉장히 민주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개인은 평등하게 여겨졌고 우두머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폭군처럼 독재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약하고 작은 개인들이 여럿 뭉쳐 같이 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0명 정도의 크기일 때에도요. 농경 시대가 되고 직업이 전문화되기 시작하면서 위계 질서도 나타나고 권력의 차등, 역할의 차등이 나타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헌법이나 자유민주적인 사회의 법칙을 통해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금의 시스템이 어쩌면 농경사회 이전의 인류 모습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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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잘 디자인 된다면 권력이 없어도 권한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권한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배제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인류는 역사상 선사시대에서부터도 민주적인 사회와 법칙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고요.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보다 다정한 사회를 위해서도 민주주의는 가장 나은 체제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다정한 본성 속에 자리한 어두운 면을 견제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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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거리두기는 일상화되고 그 어느때보다도 갈라지는 시대, 서로 협력하기 위해서, 혹은 좋아하지는 않아도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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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비인간화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 결국 모두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신뢰할 수 없는 그룹과도 우정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같이 꽃밭에서 손잡고 놀기까지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최악의 본성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최소한 서로를 인간으로 존중하고, 어떤 방식을 통해서건 연결해서 우정을 쌓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를 비인간화하면서 자칫 우리 안의 어두움인 잔인함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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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이라는 세 가지 전공을 가진 브라이언 헤어 교수의 과학과 역사, 정치를 아우르며 세상을 들여다보는 융합적인 사고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이 시기 살아남기 위해 똑똑한 것과 다정한 것 가운데 어떤 게 진화적으로 더 중요한 재능인지 우문을 던져봤습니다.
“그 문제는 이미 데이터가 있습니다. 다정함을 ‘따뜻함’이라고 정의하고, 똑똑한 것을 무엇인가에 ‘능숙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물론 두 가지 다 굉장히 우리 삶에 중요한 능력이지만,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기필코 ‘따뜻함’입니다. 능력 있어 보이는 것보다 따뜻해 보이는게 더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있습니다. 더욱이 능력이 있는데 차가운 사람은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 다 필요하지만 따뜻함이 있어야 자신이 가진 능력도 제대로 표출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수님도 연구 주제를 따라가는지 굉장히 친절하고 호탕했던 헤어 교수의 다정한 현답이었습니다.
* 다음주는 추석연휴로 한 차례 쉬어갑니다. 다들 마음이라도 풍성하고 여유로운 추석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21일(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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