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다이어리

Ep.73

Ep.73행복도시 견문록

2021.10.06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하루! SBS D포럼이 전해드리는 SDF다이어리입니다.

올해 저희 SBS D 포럼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 다르게 같이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동안 잘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어떻게 하면 더 정책이나 정부의 중요한 화두로 반영될 수 있을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마침 최근까지 세종시에서 주재하며 정부를 취재했던 SBS 경제부의 화강윤 기자가 SDF를 준비하는 저희 미래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SDF 다이어리 73번째 이야기는 팀의 새 식구가 된 화강윤 기자가 지난3년 간 '행복도시' 세종시에서 보고 들었던 한국 공직사회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인터뷰 진행 = SBS 류란 기자)
Q.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SDF 다이어리 구독자 여러분! SBS 기자 화강윤입니다. 2014년에 입사해 사회부에서 사건, 사고를 주로 취재했고, 이후에 세종시에서 경제부 기자로 3년 넘게 일하면서 경제 정책 분야를 주로 보도했습니다.

Q. 세종시 주재 기자라는 직전 근무지가 아주 특이합니다. 직접 경험한 세종시는 어떤 곳이고, 이곳의 주재 기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세종시를 행복도시라고 많이 부릅니다. 낭만적이죠.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줄임말입니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대전과 청주 사이에 새로 건설한 계획도시입니다.

국무총리 관저를 비롯해 국무총리 비서실과 국무조정실이라는, 정부 부처의 전체를 관할하는 정부 기구가 있고요.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10여 개의 중앙 행정기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외교부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여성가족부 등 수도권에 남은 일부 부처를 빼고는, 대한민국 정부의 핵심 기능이 다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2년 무렵 공식 출범해서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도시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오가는 데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세종에 마련된 사택에 머물면서 상주하는 기자들이 있는데, 저도 그렇게 혼자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부의 입장을 취재해서 보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주로 경제관련 정책이 담당 업무였는데, 예산, 세금, 경제정책, 고용동향 같은 각종 정부 통계와 부동산 정책 부문을 다루는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Q. 생활 공간이 가깝다 보니 취재원인 공무원들과 퇴근 이후의 삶도 공유되는 그런 생활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궁금해요.

저는 청사에서 아주 가까운 동네 중 하나인 가재마을에 살았습니다. 공무원들도 다 근처에 살고, 기자들도 다 근처에 살아요. 저는 그래서 세종 생활이 대학 캠퍼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근처에 기숙사나 하숙집 같은 생활공간이 있고, 학생들이 주로 가는 식당과 주점, 이런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출근 거리도 굉장히 가깝고, 일이 끝나고 나면 또 저녁도 같이 먹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취미 생활을 같이 하기도 하고. 다 동네 사람들인 거예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그런 대학 캠퍼스 같았어요. 술 마시는 곳이 거기서 거기 거든요? 저녁에 술을 마시고 있으면 옆 테이블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들인 거죠.

생활 공간이 직업 공간이랑 물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은 큰 장점이면서 동시에 취재원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서로 공유하는 경험과 시간이 많아지면, 그 사람들의 입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비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공무원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나 멘탈리티를 외부자로서 가장 직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지금 경제, 사회 부문에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을 실제로 만들고 다듬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을 서울에서는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다 세종에 내려가 있는 거예요. 서울서 왕복 4시간씩 들이지 않고 이들을 만나려면 이렇게 부대끼고 살 수밖에 없는 거죠.

Q. 세종에서 그렇게 취재원들을 가깝게 만나는 게 정책에 대해서 이해하고 취재하는 데에 도움이 되던가요?
. 그 부분이 제가 기대했던 부분이고, 또 가서 200% 만족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여러 브리핑 뿐 아니라 사무실에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았고, 열심히 점심·저녁 약속을 만들어서 접촉면도 얼마든지 넓힐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정책을 왜 해야 되는지,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한계점, 방향 등 자초지종을 쭉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거죠.

산업동향 통계를 다룬 SBS8뉴스 <경제 지표는 파란불…바닥 경기는 빨간불> 보도 중 (2021.3.31)
풀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들여다보면 그 배경이 아주 많이 꼬여 있습니다. 이걸 2분 남짓한 방송 뉴스로 줄이고 줄여서 전달하려면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작은 디테일이 어긋나버리면 사실과는 큰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 당장 오늘 저녁 뉴스를 만들어야 할 때는 기사를 쓰기가 참 어려워요. 왜 이런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럴 때 시간을 가지고 담당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훨씬 좋았습니다. 오늘의 뉴스가 어떤 큰 그림 속에서 어디쯤 있는 상황이며, 다른 문제들과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일인지, 세종에서는 그 이야기의 연원부터 들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있는 거죠.
제가 만난 세종의 담당 공직자들은 대부분 맡은 일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점이 30~40년 전 이렇게 될 때도 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몰랐던 사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Q. 그곳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상당히 고위직 공무원이고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인 거잖아요? 실제 만나보니 어떻던 가요?
세종에서 만날 수 있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중앙 부처의 고위급 관료들입니다. 대부분 행정고시 같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거나 또는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들이고요. 제 또래들도 꽤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도 대부분 고위급이라고 할 수 있는 5급 사무관들이었고요.
처음에 취재를 하면서 굉장히 놀랐던 건 이들 개개인의 권한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과 이름이 '자동차 정책과'예요. 대한민국의 자동차 정책을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한 10명 안팎의 공무원들이 앉아서 이끌어가고 있는 거예요. 기재부의 국방 예산과라고 하면 대한민국의 국방 예산 몇 십 조 원이 그 방 안에서 꾸려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무관이 만지는 예산이 몇 백억이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지요. 한 사람이 이렇게 광범위한 책임을 맡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권한이 크고 넓고요. 또 어떻게 보면 업무가 과중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조심스럽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좀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할까요? 어쨌든 공직자로서 법에 묶여 있는 거고, 법규를 지키고 시행하는 사람들이지, 법을 판단하거나 만들거나 하는 영역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엄격하게 법, 그리고 시행령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까 이 범위를 벗어나는 영역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죠.

일하면서 참 피곤했던 게, 전화 돌리기예요. 이런 행태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궁금한 일을 담당하는 책임자를 찾는 데에 한참 걸리는 거예요. 전화를 돌리고, 돌리고. 또 어떤 사안은 여러 명이 담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칼 같이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 없다." 면서 잘라내는데요. 처음엔 많이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책임자와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어쨌든 시간이 걸려도 누군가는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긴 하니까요.


Q. 우리가 으레 공무원이라고 했을 때 갖는 편견이 사실 거기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건데요. 사실 '고시'라는 것을 거쳐서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 공무원들은 그만큼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통로가 부족해지는 거잖아요. 서류만 보고 탁상공론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요?
그 부분이 대한민국 공직 사회가 마주한 제일 중요한 현안이고,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원래도 그런 면이 있었겠지만 세종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더해진 거예요. 정부, 나라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섬에 갇혀 있는 상황인 거죠.

저도 3년 간 절실하게 느꼈지만, 인구 1천만 명이 사는 서울과 30만 명이 갓 넘는 세종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의 종류, 다양성이 차원이 다릅니다.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굉장히 줄어들어요.

공직자나 저희 같은 기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업무에 연결을 하곤 하는데요. 꼭 자기 업무 분야가 아니더라도 사회가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업무 영역의 이야기라도 나의 일을 좀 더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상적인 만남들을 서울이라면 점심, 저녁, 커피 한 잔, 이렇게 편하게 가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을 만날 목적을 가지고 세종에 출장 온 사람을 만나거나, 서울로 출장을 가서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세상과 거리가 생긴 거죠.
이 문제를 공무원들도 인식하고 있어요. 답답해하고 있고. 뭔가 정책을 할 때는 많은 민원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런 문제들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지 공직자들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결국 답은 당사자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 수밖에 없는 건데, 인력이 철철 넘치는 상황이라서 편하게 현장 출장을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고 아무한테나 전화해서 "들어오세요" 시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그래서 공직자들도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고, 이 상황은 코로나19 이후에 더 심해진 점이기도 합니다.

공직자들이 기자들을 만나면 제일 반가워하는 얘기 중 하나가 현장 얘기에요. 어쨌든 저희 기자들은 사례를 찾아야 하니까 현장을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그때 들었던 얘기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뭐가 더 문제라고 하는지, 그런 현장 얘기들을 해주면 관심있게 빛나는 눈빛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간담회나 현장방문 같은 것도 종종 하는 것 같고 한데, 그래도 제가 봤을 때는 기회가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이 들어야 되는 것 같아요.

Q.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직자들에게 전달이 안 되는 것은 정말 문제인 것 같아요. 또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전달이 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잖아요. 소통에 있어서 빈익빈 부익부가 생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죠. 지금도 사무실 찾아가 보면 항상 회의실, 사무실 앞 테이블, 이런 곳에 민원인들, 이해당사자들이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세종까지 가서 정확한 담당자를 찾아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줄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 의지가 있는 사람들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거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제대로 들어가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사실, 여러 입장의 이야기가 다 들어가기는 들어가요. 모르는 이야기는 거의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디지털화된 다양한 민원 창구를 통해 여러 목소리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들을 파악은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목소리가 너무 많은 거죠. 너무 많아서 뭐가 급한 문제인지, 뭐가 당장 해결해야 될 문제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올바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지죠. 이 과정에서 결국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사람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자기 입장을 합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형태로 공직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될 수 있는 거죠. 당연히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의 입장이 정부 정책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겠죠. 소통에서도 격차가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자연스럽게 이번 SDF 2021의 주제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시민들이 지금 나의 문제가 너무 답답하고 해결이 갈급한데, 어디로 전달을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답답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민 개개인의 목소리들이 정책에 잘 반영되도록 하려면 어떤 부분들이 개선되어야 할까요?

기자실에서 나서서 점심 많이 먹는 먹자 골목으로 쭉 가다 보면 기재부부터 해수부, 국토부, 환경부, 이렇게 지나가요. 그러면 정말 다양한 목소리들이 길거리에 붙어 있어요. 또 집회나 기자회견도 많이 하고요. 이 분들이 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분들이고, 내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하는 분들이죠. 어떤 지역을 개발해 달라, 또 개발하지 말아라. 커다란 사거리 네 귀퉁이에서 서로 다른 얘기를 동시에 막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목소리가 곧바로 반영이 되지 않는 건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죠. 갈등이 있는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내 편을 들어달라."고 얘기하는 건데, 그 갈등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다면, 그만큼 그 갈등이 깊고 풀기가 어려운 거예요. 뭔가 하나를 바꿔버리면, 그 다음 날에는 다른 곳에서 와서 또 목소리를 낼 거예요.

이런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은 저는 정치의 영역인 것 같아요. 이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이 과연 선출되지 않은 세종시 공무원들의 역할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있는 거죠. 사실 공무원들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해야 되는 사람들인데,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이익을 반영해서 일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실제로 대부분의 문제가 풀어지는 상황을 보면, 결국 국회에서 싸움이 붙고, 보통은 한 쪽에서 밀어붙이는 식으로 결론이 나고, 그렇게 조율이 끝나고 나면 세종시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가 많아요. 여의도나 광화문에서 방향을 결정하면 거기에다가 동력을 제공하는 엔진이 세종시인 거죠.
그래서, 그 횡단보도 앞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세종시까지 가서 얘기를 해야 되는 상황인 것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우리 정치 시스템이 이런 갈등을 조율하는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결국, 길을 못 찾은 목소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국민 신문고, 청와대 국민 청원, 그리고 또 세종시까지 오는 거겠죠. 답을 듣지 못한 목소리들이 지금 자꾸 밀려 나오는 것 같아요. 다른 영역으로, 세종시까지.
우리 사회에 갈등이 참 많은데, 그걸 푸는 일을 우리가 정치권에 더 많이 요구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정치권도 자신의 조직과 정치 세력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서 다툼만 하기보다는 좀 더 합의하는 방향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는 역량이 커지면 좋겠어요.

Q. 사실 행정수도 이전의 역사를 보면 공무원들의 업무 효율성보다는 지역 균형 발전을 더 추구했던 측면이 강합니다. 공무원 당사자들은 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여전히 세종 곳곳에는 "개헌으로 행정 수도 완성하자"는 표어가 곳곳에 붙어 있어요. 청와대나 국회 같은 대의적 정당성을 가진 핵심 기능이 넘어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행정 수도라는 개념이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거죠. 그리고 실제 그게 많은 비효율로 나타나고 있고요.

굉장히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또 임금도 많이 받는 엘리트 인적자원인 고위공직자들이 많은 시간을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 시민들이 감당하고 있는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에서 부른다거나 청와대에서 회의가 있다고 하면 3~4급 국과장들까지 버스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야 하죠. 오전에 세종에서 업무를 보다가 점심 먹고는 서울에 갑니다. 오전에는 광화문에서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세종에서 회의를 하고, 이런 식이 많더라구요. 국가적인 낭비, 비효율이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옛날 얘기지만 그런 농담이 있었어요. IMF 외환위기 사태가 과천 청사에 있었던 재무 관료들이 남태령 넘어 다니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늦어져서 대응이 늦어졌다는 이야기요. 20년 전의 이야기니 실제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간극이 더 멀어진 거죠. 행정 수도는 지역 균형 개발을 위해서 건설됐고, 분명히 의미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여러가지가 원래 계획에서 수정되면서 지금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거리를 좁히려면 커뮤니케이션이 지금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국회가 세종 분원을 설치하는 수준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청와대나 국회를 아예 옮길 게 아니면, 이 상태에서 소통을 효율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사회가 빨리 강구해야 할 것 같아요.

Q.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화상 비대면의 가능성을 확인했는데요, 여전히 세종에서의 업무가 대면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부분이 남아있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요즘 수업이나 재택근무도 비대면으로 하고 있는 시대지만, 또 동시에 사람을 만나서 들었을 때의 정보와 화상으로 만났을 때의 정보 값이 다르죠. 기자들끼리 원칙 중에 하나가 "현장에 답이 있다"잖아요?
코로나19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비대면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했지요.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화상으로 수업을 들으니까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몸으로 인식하고 있을 거예요. 대면과 화상은 소통의 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요. 아직은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있죠.

우리가 이 벽을 기술로 아예 넘어설 수 있을까요?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기술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또 아직은 다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모르죠. VR, AR, XR 같은 기술로 하는 소통이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것과 같은 긴밀한 소통의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저는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고 믿고 있고요, 특히 세종시에서 가장 먼저 도입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긴급한 필요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효율이 굉장히 크고 심각하기 때문에요.

물론 정부에서도 화상회의를 많이 한다고 하고, 매주 국무회의도 화상으로 서울과 세종을 동시에 연결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 국무회의장도 들어가 봤는데 물론 훌륭한 시스템이 되어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한계를 더 적극적으로 넘어서든가, 아니면 얼른 다른 대안을 찾아야 되는 것 같아요. 정부 내부의 소통 체계 자체를 지금처럼 비효율을 만들어내지 않는 체계로 전환하는 게 필요합니다.

Q. 이번 SDF 2021의 주제가 "5천만의 소리, 지휘자를 찾습니다" 잖아요. 내년이면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세종시의 사람들은 이런 대통령 선거의 영향을 많이 받나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방향이라는 게 정권이 바뀌면 180도로 바뀌지 않습니까? 이전에는 달성해야 할 목표였던 것들이 하루 아침에 청산해야 할 사업으로 바뀌기도 하고요. 특히 지난 대선이 탄핵으로 시작되었고,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나서 공직사회에도 풍파가 많이 일었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있었고, 원전과 관련해 공무원들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 같은 경우도 김해신공항 방안이 백지화되고, 가덕도 안이 다시 살아나서 추진되고 있고요. 며칠 전까지 김해 신공항을 잘 짓기 위해 야근을 하다가 백지화가 된다든가, 원전 산업의 진흥을 위해 방법을 짜내던 조직이 원전을 폐기할 방법을 고민한다든가 하는 상황인 거죠.
한편으로 보면, 민주적인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선발된 공무원들이 선출된 권력의 지시에 따르는 건 민주주의 시스템의 한 원리라고 볼 수도 있죠. 하지만, 공무원들도 사람이고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차원에서, 그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이건 굉장히 큰 일입니다. 어떤 조직이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던 일이 정부가 바뀌면 다시 최선을 다해서 반대로 가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공무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이 일을, 열심히 해야 하나?'

우리가 공직사회에 기존의 관행에서 탈피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당면한 과제들을 혁신해 나가기를 요구하는데요. 그러자면 일을 열심히 하다가 쇠고랑을 찰 수 있다는 공포감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 법과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불법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일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그런 공포감을 크게 가지고 있으면 계속해서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변화도 기대할 수 없게 되겠죠.

다가오는 대선을 보는 공무원들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것 같아요. 지금 정부가 정권 교체 이후 여러 개혁적인 정책들을 추진했고, 그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잘 만든 공무원들이 이 정부에서 성공했죠. 승진하고, 보상을 받았는데, 그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면 도태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세종시와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정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당연하고 올바른 상황이 아니라고 봐요. 일을 잘 하는 공무원들이라면 어느 세력이 정치권력을 잡든 상관없이 계속 일을 잘 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당면한 여러 혁신 과제들이 있는데, 공직자들이 적극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민주적인 정당성을 공직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 문화가 뭘 지, 시민들과 정치권이 함께 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과 권력 남용은 분명 문제이고, 견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목소리가 구체화되는 것은 결국 세종시에서 만들어진 페이퍼들인데, 이 페이퍼들을 쓰는 사람들이 겁을 먹고 있다면 그건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공무원들도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것 같아요.

Q. 공무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무원들이 '나인 투 식스' 하면서 놀고먹는다는 인식이 많지만, 기자인 제가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아무래도 현안이 뜨거운 분야의 공직자들이고, 그러다 보니 굉장히 일이 많았어요.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도 분명 있겠지만, 휴일도 없이, 가족들도 제대로 못 챙기고 일하는 공직자들을 저는 많이 봤고요. 공무원들은 근로기준법도 적용이 안 돼서 어떤 사람들은 워라밸이 정말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어쨌든 '이 일을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공직자 분들에게 굉장히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될 부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죠. 특히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체념에 빠져 있는, 그런 무력감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가지 권한의 한계 때문에 느끼는 좌절감도 있을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을 생각해서 더 적극적으로 일해줬으면 좋겠다. 더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다”, 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더 용기를 가지고,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더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고, 건강을 잘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같은 기자라 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세종시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공무원만 취재하는 경험은 흔치 않은데요. 정부와 정치의 역할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화강윤 기자의 뉴스레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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