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D포럼(SDF) 오프닝 퍼포먼스는 ‘암전(暗轉)’ 상태에서 시작됐습니다. 관객들의 눈이 컴컴한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이 나옵니다. 이어 어둠에 가려져 있던 아티스트 '모니카'가 나타나고 그녀의 몸짓이 점점 빨라집니다. 그 뒤로는 거대한 고래 세 마리가 몽환적으로 유영하고 다녔는데 혹시 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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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F 오프닝 퍼포먼스 ‘What is in Harmony’ 장승효×모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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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모니카’의 춤에 매료돼, 대형 화면에 구현된 영상을 자세히 못 보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SDF 다이어리’를 통해 이 작품을 제대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설명에 앞서 이 영상을 유튜브로 먼저 보셨으면 합니다. 4분 정도 되는데요, 색이 어떻게 전환되는지, 고래들이 헤엄칠 때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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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기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조화를 이루며 잘 지내던 세 마리의 고래가 어떤 일을 계기로 대립과 갈등, 분열에 빠집니다. 결국, 공동체는 무너지고 고래들은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되는데요, 그러다 꿈속에서 다른 고래들과 함께 있던 때를 그리워합니다. 꿈에서 깬 고래들이 다시 모여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새로운 사회를 열어간다는 얘기입니다.
이념, 세대, 젠더 등 온갖 분야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진영 간 ‘편 가르기’로 얼룩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미디어아트를 통해 표현한 건데요, 이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한 아티스트는 장승효 작가입니다. 장승효 작가는 그동안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회화·조각·공간연출 등 다양한 장르의 융합을 시도해왔습니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도 더해서요. 이번엔 SDF팀과 ‘다시 쓰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콜라보레이션’을 했는데요, 이 ‘협업’이 어땠는지 듣고 싶어서 최근 장승효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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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민주주의’ 내용의 작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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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는 처음 경험해봅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참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에 관심이 많거든요.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비롯해서 이런 잡다한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고, 그런 생각을 작업에 반영을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쓰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많이 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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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프닝 퍼포먼스를 무대 앞에서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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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품은 2차원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모니카의 퍼포먼스가 들어가면서 완전히 4차원이 된 것이죠. 대형 LED 무대 그 자체도 굉장히 장엄했지만, 무대 위에서 인간의 몸짓과 2차원의 미디어 아트가 만나 하나의 그림으로 펼쳐졌을 때, 창조에 대한 어떤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명체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아주 원초적인 창조 에너지 같은 것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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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래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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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몸집이 굉장히 큰데도 쓸쓸하고 외로워 보여요. 그래서 현대인의 모습을 고래로 설정해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상에 나오는 고래의 몸을 자세히 보면, 영어로 소울(soul)이라고 새겨져 있어요, 현대인의 영혼이 고래에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스토리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고래가 다 같이 있다가 혼자 남고,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다원주의와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기승전결을 바탕으로 영상을 기획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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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작품만 온전히 보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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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전 세계에 있는 마천루가 다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자연도 있어요. 문명과 자연이 같이 있다는 것을 바닥에 깔았습니다. 날씨도 스토리에 맞게 설정했습니다. 노을은 불안을 암시하고, 번개와 비는 고난의 시작을 알리고, 번쩍거림과 패턴은 꿈속을 말합니다. 그리고 꿈에서 깰 때, 꽃가루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TV 화면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찬란한 하늘은 새로운 아침을 의미하고요. 다만, 이 모든 것은 작가의 의도일 뿐이고요.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전달됐을 수도 있어요. 예술작품은 작가 기획 의도보다 해석하는 사람의 몫이 훨씬 크다고 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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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어떤 미디어 아트 작품을 해보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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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공간 속에서 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아요. 메타버스가 현실과 똑같을 필요는 없잖아요. 메타버스가 어떤 창조적인 아이디어나 이미지와 결합이 됐을 때, 유토피아에 가까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현실에 있는 테마파크나 뮤지엄을 메타버스에서 구현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지 데이터들이 가상 세계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서 ‘메타 아트 월드’와 같은 뮤지엄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런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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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효 작가를 만날 때, 조윤지 큐레이터도 같이 인터뷰를 했습니다. 조윤지 큐레이터는 아티스트 에이전시인 꼴하우스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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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큐레이터 역할에 대해 설명을 부탁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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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효 작가님이 자신의 세계를 작품에 펼칠 수 있게 여러 가지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SBS의 니즈와도 맞아야 하고, 무대와도 맞아야 해서 이런 전반적인 것들을 조율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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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업 과정에서 힘든 점이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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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주제가 눈에 보이거나 잡히지가 않고, 어떻게 보면 예민하게 해석될 수도 있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너무 정치적으로 다가갔을 때 누군가의 반감을 살 수도 있고, 그것을 너무 대중적으로 풀려고 하면 의미가 퇴색이 될 수도 있어서 그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시간도 조금 부족했어요. 대형 LED에 들어갈 미디어 작품을 만들어야 했는데, 한 달 안에 작품을 끝내야 하고, 렌더링(그래픽 이미지 합성) 시간도 필요하고… 작품을 대형 LED에서 틀어보기 전에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를 알 수가 없는 점도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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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막상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나서는 어땠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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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있는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은 건물의 움직임도 그렇고, 특히 작업할 때 작게 보이던 고래가 웅장하게 등장할 때 감동이었습니다. 두 개의 대형 LED가 겹치는 부분에서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연출팀이 미디어아트 작품을 생각하고 무대를 만들어 준 느낌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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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F팀은 다른 언론사 포럼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그리고 방송사가 가진 종합 미디어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매년 ‘오프닝 퍼포먼스’를 준비해왔습니다. 사실 편하게 포럼을 준비하자면, 주제와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공연만 잘 하는 분들에게 부탁하면 되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고 포럼에 대한 ‘진심’을 전하기 위해 저희는 포럼 주제에 맞는 문화 예술인을 찾아 섭외하고, 또 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곱씹어서 무대를 준비합니다. 예술·공연을 매개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면 조금 더 감화를 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오프닝 퍼포먼스를 만들고 싶었지만, SDF 개막을 앞두고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해 추모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들은 조금 들어내거나 수정했습니다. 자칫 아티스트의 기획의도가 엉클어질 수도 있었는데도, 저희 의견을 반영해 마무리 작업을 해주신 장승효 작가님과 조윤지 큐레이터, 그리고 모니카님에게도 다정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오프닝 퍼포먼스를 준비해야 할까요? 기획이나 섭외는 잘 될까요? 벌써부터 걱정이 밀려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떤 아티스트와 함께할지 기대가 됩니다.
지난 5일자 인사로 그동안 든든한 역할을 해준 박현석, 채희선 두 동료 기자를 다른 부서로 떠나보냈습니다. 이렇게 2022년의 SDF와 이별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크리스마스 시즌이 됐네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드릴까 하다가 장승효 작가님에게 부탁해, 작품 하나를 준비해 아래 덧붙였습니다. 모두의 겨울에 따뜻한 위로가 있기를…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포근한 한 해의 끝이 되길 바라며 뉴스레터 마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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