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다이어리

Ep.155

Ep.155AI 시대에 인문학을 배워라?

2023.06.28
오늘 ‘SDF 다이어리’는 미술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여기 이 그림을 보시죠.

▶ 제이슨 앨런 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이 그림을 두고 지난해 8월,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 출품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란 그림인데,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수상자는 화가가 아닌 게임 기획자 제이슨 앨런. 출품 당시 명시된 작가 이름은 'Jason M. Allen via Midjourney', 번역하면 ‘미드저니를 이용한 제이슨 M. 앨런’입니다.

▶ 제이슨 앨런은 모두 세 편의 이미지를 대회에 출품했습니다. 수상 후 미드저니 프로그램이 적용된 채팅 앱 '디스코드(Discord)'를 통해 어떤 작업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완성했는지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그가 이용한 ‘미드저니(Midjourney)’는 인공지능(AI)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을 사용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용법이 꽤 간단합니다. 메시지 창에 이미지를 설명하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으로 4개의 이미지가 생성됩니다. 이 중 원하는 걸 골라 사이즈를 바꾸거나 효과를 추가한 뒤 저장하면 작품 하나가 뚝딱 완성됩니다.

미드저니가 만들고 사람이 제출한 이 그림은 작가의 창의성이 발현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AI 프로그램으로 찍어낸 이미지 제품에 불과한 것일까요? 이 논쟁적인 주제를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올해 세계사진협회가 주관하는 권위 있는 사진전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는 크리에이티브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작가가 출품작이 AI로 생성한 이미지란 사실을 스스로 밝히며 수상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생성 AI의 등장으로 패닉에 빠진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겨왔던 창작이란 무엇인가? 생성 AI는 한계가 있는가? 인간의 고유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미래팀은 최근 『AI 빅뱅 ?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를 출간한 철학자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를 만났습니다.
Q. 교수님 책 제목이 ‘AI 빅뱅’일 만큼, 올해는 생성 AI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AI를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시작됐는데, 교수님은 AI가 두렵지 않으신가요?
AI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어떤 것들이 있고 잘 못 하는 게 어떤 건지 그게 저한테 사실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기술 관련된 보도에서는 과장이 심해요. 과장이 심한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언론인들이 기술을 잘 몰라요. 두 번째는 빅테크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과장해서 소개하고 그걸 통해 주가를 부양하거나 투자를 받는 이런 경향들이 강하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우리가 다 받아들일 수는 없고요.

인공지능이 사실 조금 깊게 들어가면 어떤 자발성을 갖고, 다시 말하면 어떤 의도나 의지를 갖고 자기 작업을 제어할 수 있느냐, 인간적인 수준으로 얘기하면 의식을 가질 수 있느냐 그 문제가 관건인 것 같아요.
Q. AI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느냐는 접근이 흥미로워요.
의식을 갖는다는 것에 중요한 특징은 자기가 직접 목표를 세운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중간 과정, 설계하거나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는 이런 것들이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구조상,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아키텍처(Architecture)’[1]를 짤 때, 그런 방식으로 지금 설계돼 있지 않아요.

현존하는 인공지능은 모두 인간이 시키는 걸 잘 수행하는 최적의 수행, 예를 들면 생성도 마찬가지지만 분류라든지 예측이라든지 이 과업에 대해서 인간이 부여한 어떤 숙제, 태스크(Task)를 잘 해결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SF에 등장하는 형태인 인간을 절멸시키거나 인간하고 싸우거나 그밖에 인간을 이용하거나 그런 방식의 인공지능은 나올 수 없다는 게 큰 틀에서는 얘기될 수 있고요.
[1] 아키텍처(Architecture)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데 기초가 되는 시스템의 기본 설계 방식을 말한다.
Q. 직접 목표를 세우지 못한다고 해도 그림이나 음악, 영상, 언어처럼 창작의 영역에서는 충격이 상당한 것 같아요.
우리가 ‘생성’, ‘창작’ 이런 말들을 쓰는데, 과연 진짜 하는 것이냐 아니면 겉으로 볼 때는 그럴 듯하게 비슷한 결과물을 내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냐 이걸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가령 저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데 저보다 그림을 잘 그려내는 식으로 인공지능이 보통 사람들의 어떤 ‘평균치보다는 잘 한다’라는 건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아주 수준이 높을까를 물어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정규분포 있죠? 통계에서 정규분포의 중앙 부분에 모여 있는 어떤 결과들, 이걸 잘 내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창작에서는 정규분포의 롱테일[2] 부분, 특히 좀 어려운 쪽의 롱테일 부분을 전문가 수준까지 놀라게 하거나 그런 결과물들을 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이제 평가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요.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서 하는 모든 작업은 그 결과물을 사람이 평가해서 내놓는 형태일 수밖에 없어요. 스스로 어떤 일정한 품질의 결과물을 내놓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다 동원해서 뽑아내는 거라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뽑아낸 결과물을 최종적으로는 직접 평가한 후에 내놓는 것, 평가 행위라는 부분에서 저는 엄청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2] 롱테일은 그래프에서 중간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부분에 이어 길게 늘어진 꼬리처럼 보이는 부분으로 ‘롱테일 법칙’이란 경제학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롱테일 법칙’을 고안한 크리스 앤더슨은 2007년 SDF 연사로 처음 방한했다.
Q. 지금은 막연하지만 앞으로 일자리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날 것 같은데요.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에서 직업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인간에 의존하던 일자리의 비율이 상당 부분 기계로 옮겨가는 게 확인이 됐고요. 아마 생성 인공지능은 그걸 더 가속화할 것 같아요. 2027년이 되면 결국 인간이 혼자 하는 일과 기계에 의존하는 일이 절반이 된다, 이 얘기는 어떻게 보면 일자리에 치명적인 위험이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불평등의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2020년에서 2021년, 코로나 기간 2년 동안 ‘옥스팜(Oxfarm)’에서 조사한 결과예요.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옥스팜은 지난 1월 '슈퍼리치의 생존(Survival of the Richest)'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유례없는 복합위기와 심화하는 불평등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부유층의 과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보고서 원본은 옥스팜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2년 동안 창출된 부의 62%인가를 1%의 사람이 가져갔대요. 결국은 빅테크 기업들일 수밖에 없겠죠. 인공지능 붐을 주도하는 것 역시 빅테크이고, 나머지 99%의 인구가 가져간 부는 정말 얼마 안 된다는 얘기죠.
Q. 일자리를 뺴앗긴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요.
기계가 인간의 일을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다면 인간은 이제 노동의 의무에서 좀 벗어나서 삶, 자기의 삶 자체를 좀 집중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식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하는 시간이 대폭 줄고 주 4일 근무 이런 것도 얘기되는데 그런 방식으로요. 그리고 지금 불평등이 극심한 상황이라면 그렇게 많이 가져가지 않게끔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나… 가난, 굶주림 이런 것 때문에 고통 받지 않을 수준까지는 글로벌 거버넌스 수준에서 일단 보장하고, 그 밖에 더 즐길 사람은 즐기도록 하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소하게 자기 기쁨을 찾는 그런 방식으로 사회 구조나 제도 자체가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됩니다.
Q. 지금은 노동이 전부인 삶을 살다 보니 일 자체가 곧 내가 되는데요.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면 일 말고 다른 것에서 나를 찾아야 하잖아요.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가야 한다고 보세요.
인간이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성취하려고 했던 게 뭔지 생각해보면 ‘노동에서의 해방’인 것 같아요. 현대인의 우리, 특히 젊은 친구들 모두의 꿈은 건물주잖아요. 항상 질문하는 게 ‘그러면 건물주가 됐고 월 소득 1억이 됐다고 쳤을 때 어떻게 살 거야?’, ‘돈이 충분하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너는 어떻게 살 거야?’, ‘뭐가 너한테 재밌는 거야?’라고 질문을 해요. 답을 못해요. 여행 좀 가고 맛있는 것? 그건 금방 질려요. 사람들이 마약을 하고 극단적으로 가는 것도 재밌게 노는 법을 몰라서 그렇게 간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는 더 심각해질 것 같아요. 왜냐하면 노동에 매여 있는 시간 동안에는 별 고민을 안 해도 됐는데 거기서 놓이는 순간 이제 정말 실존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되고, 정말 이때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될지, 혼자 있을 때 뭘 해야 될지 등등 이것들이 이제 물밀 듯이 질문거리로 들이닥칠 거라고 생각하고요. 이건 아마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들이 먼저 겪게 될 어떤 사회적인 문제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미국에 이를테면 상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나 유럽에 잘 사는 사람들이 여유가 생긴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조금 먼저 닥치고, 우리도 꽤 높은 수준의 선진국이니까 곧 닥칠 문제일 것 같고요. 그래서 인문학이라든지 이런 것이 해야 할 역할이 더 커지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Q. 그래서 책의 부제가 ‘인문학 르네상스’인 거군요. 기술발전이 최고조에 달한 이 시대가 인문 예술의 힘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이 역설적이네요.
일단 인문학이 과거 우리가 전통 인문학이라고 불렀던 문사철(文史哲), 그러니까 문학과 언어 그다음에 역사와 철학 이걸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원래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었고 이건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데, 언어라는 게 우리가 자연어라고 부르는 타고난 언어에 한정되지 않은 게 꽤 된 것 같아요. 근대에 접어들면서 수학과 과학이라는 세상을 이해할 때 꼭 알아야 되는 언어가 새롭게 확인됐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다가 예술 그다음에 디지털 이런 것들이 오늘날 언어의 일부라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이제 언어가 넓어집니다. 저는 그걸 확장된 언어라고 부르고요. 이 확장된 언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인 확장된 문해력, 확장된 리터러시(literacy)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확장된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과정으로 확장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활동 창작 활동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오늘날도 계속 이어지는 인간다운 어떤 시도랄까 이런 게 저는 확인되는 것 같아서 요즘 같은 때가 이때의 인문학은 좀 넒은 개념이긴 하지만 인문 예술이 갖고 있는 힘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산업화 시대 이후 그런 요소들을 우리가 간과해 왔었다면 이제는 좀 제대로 잘 사는 것, 이것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으로 삼아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됩니다.
인터뷰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생성 AI가 노동을 대체해주면 그토록 바래온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운지 모르겠다고 말이죠. 김재인 교수는 AI가 인간을 넘어서거나 비슷한 수준의 ‘특이성(singularity)’을 갖는 담론은 현실에서 멀리 있는 얘기이고, AI가 사람의 일을 중요한 부분에서 대신할 수 없을 것이며 인간은 직업적으로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애들한테 사탕을 하나 쥐어주고 아이가 기뻐하면 괜히 오늘 하루 잘 산 것 같죠. 인간은 그런 존재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쁜 짓도 하지만 남에게 뭔가를 대가없이 주었을 때, 뭔가를 베풀 때 느끼는 만족감 이건 되게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기쁨을 알게 되면 자기가 해야 될 게 뭔지도 좀 더 생각해보게 될 것이고… 그게 출발점이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마지막에 들은 이 말 덕분에 저는 그래도 한동안 AI 빅뱅 시대 속에서 나의 인간다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글: 미래팀 이혜미 기자 par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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