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다이어리

Ep.210

2024.08.07

Ep.210정치철학으로 본 ‘저출생·이민’ 해법은?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인사이트, SBS D포럼에서 전해드리는 ‘SDF다이어리’입니다.

‘SDF다이어리’는 저출생·고령화의 해결책으로도 언급되는 ‘이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번째 다이어리(‘출산율 0.72명’ 사라지는 인구...‘이민’이 답인가?)에서는 급격한 인구 감소를 이민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묻기 위해 한국이민학회 연구이사 이충훈 교수를 만났습니다. 이어 206번째 다이어리(‘이민자의 눈으로 본 이민 정책은?’)에서는 16년간 한국살이를 하고 있는 스리잔 꾸마르 부산외대 교수님을 만나 이민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지난달 29일 영국 사우스포트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으로 어린이 3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반이민 시위'가 영국 전역으로 번졌다.> 출처: 연합뉴스
그러던 중 최근 영국에서 수년 동안 보지 못했던 반(反)이민·극우 폭동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폭동의 계기는 지난달 29일 영국 북서부 도시에서 발생한 흉기난동으로 소녀 3명이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문제는 용의자의 신원이 드러나기 전, 극우 인플루언서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국에 망명을 신청하러 온 무슬림이 벌인 짓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었습니다. 실제 범인은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밝혀졌지만, 반이민 폭동은 이미 전국으로 번져나간 뒤였습니다.

‘이민’이라는 이슈가 인구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휘발성을 지닌 주제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또한 ‘이민’이 정치적인 거짓 선동에 악용되기 쉬운 소재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 정책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정치철학과 법철학, 인권학의 교집합에 있는 문제를 주로 연구하시는 송지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송 교수는 오는 11월 12일 열리는 SBS D포럼에서 이민 정책과 관련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Q. 2학기에 ‘이민’과 관련한 수업을 개설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민이 한국사회에도 그만큼 중요한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민 관련 논의를 보면서 각각의 전공 분야, 각각의 시각에서만 보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경제학을 하시는 분들은 이민의 경제적 효과만 보고, 정치학을 하시는 분들은 정치 과정에의 영향만, 인권학에서는 국제인권 기준과 부합하는지만 보거든요. 다 중요하긴 한데 서로 대화가 안 되다 보니까 결국 사람들은 정치인들 이야기만 듣고 투표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복합적인 이야기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다 보니 많은 게 외면되고 왜곡됩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이민·이주 문제가 정당하지 못한 목적으로도 많이 사용되잖아요. 사실 관계가 불명확한 선전의 용도로 극우 정치인들이 활용하는 문제도 있어서,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한국 실정에 맞게 이 문제를 보는 게 제 수업과 연구의 목적이에요.
<송지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8월 2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SBS 미래팀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Q. 예를 들면요?
이민 문제를 다룰 때 피해야 할 것은 다른 나라 사례를 너무 쉽게 우리나라로 이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실증적인 현황을 좀 더 자세하게 봐야겠죠.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가 와서 국내 노동자들의 처지가 위태로워졌다’는 구도는 지금 우리 사회가 이민을 얘기하는 직접적 계기하고는 조금 동떨어진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일할 사람이 없어서 외국 사람들을 데려오겠다고 하는 거니까요. 이런 구도가 외국에서는 굉장히 흔하지만, 한국에서 지금 논의되는 맥락에서는 조금 생뚱맞은 얘기라고 볼 수 있죠.

특히 노동을 연결고리로 해서 오는 이방인들 같은 경우는 구체적으로 그 사람이나 그 직종에 대한 노동 수요가 있으니까 오는 거거든요. 특히 우리나라는 더 쉽게 올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일 없이 와서 우리 자원을 그냥 소진하고 있는 외국인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민 이슈를 악용하려는 동력은 항상 있는 거고요. 사실관계와 맞지 않는 편견을 누군가에게 덧씌우는 내러티브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얼마 전에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자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지지하는 사람도 많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아서 상징적이라고 느껴졌어요. 이민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이 이렇게 복합적이구나 싶었습니다.
최저임금이라는 게 이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일하고 이 정도는 받아야 된다는 일종의 사회적 결정이잖아요. 외국인 노동자도 여기 살면서 일하는 거니까, 최저 임금이 더 낮아질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죠. 만일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면, 지금 한국의 최저임금이 너무 높은 거겠죠. 근데 최저임금 차등화에 찬성하는 분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분들 입장을 정당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만 지급해도 일할 사람들이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니냐. 근데 그건 국내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거든요. 물론 특정 경제학적 논리에서 애초에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어요. 즉, 시장 논리에 따라 임금을 너무 낮게 주면 일할 사람이 없을 거고, 일할 사람이 생길 때까지 임금을 높이면 된다고 일관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최저임금 제도는 찬성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좀 덜 줘도 된다는 생각은 논리의 내부 정합성이 떨어진다고 봐야죠.
Q. 이민자를 같이 살아갈 사람이라기보다는 값싼 노동력으로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은데요. 국제적으로도 어떻게 비칠지, 외국인들이 한국을 선택할지 우려도 됩니다.

그러니까 이민을 (저출생 등의)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려는 발상은 빨리 극복할수록 좋습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당연히 외국에서 젊고 유능한 분들이 많이 와서 아이도 낳고 하면 인구 문제도 해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들도 와서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야지 아이를 낳을 거잖아요. 근데 지금 우리 젊은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 문제를 그대로 둔 채 그냥 한 세대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해결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거겠죠. 외국인들도 여기 와서는 ‘언제 집 사서 아이 학원 보내서 좋은 대학 보내나’ 이런 고민을 같이 할 거면 당연히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겠죠.

Q. 인구학자가 아닌 정치철학 연구자로서 저출생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세요?
정치철학 연구에서 장 자크 루소 같은 분들이 예전부터 지적해 온 관점이 있어요. 어떤 사회의 위계가 굉장히 가파르게 형성돼 있고, 윗자리를 점하기 위한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고 가정해 보죠. 그 경쟁에서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나는 좀 잘했어’ 또는 ‘오늘 좀 못했어’ 그냥 이러고 가볍게 넘기는 게 아니라, 내 자존감에 너무 크게 영향을 주는 그런 사회를 루소는 ‘병든 사회’라고 했거든요. 제가 학부생 대상 정치 철학 수업에서 루소를 가르치는데, 그 부분을 가르칠 때마다 ‘이거 한국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출처 : SBS 뉴스
한국은 대학 입시를 기점으로 해서 그런 위계를 만들고, 계속해서 또 다른 위계를 추가하죠. 그래서 요즘은 어느 대학을 들어갔느냐, 그다음에는 문과 학생들의 경우 어느 로스쿨을 갔느냐, 그다음에는 어느 직장에 가서 얼마를 버느냐, 뭐 그런 식으로 끝없는 위계가 생기고 거기에서 평생을 고군분투를 합니다. 그 고군분투의 결과가 나의 자존감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회이고 내 한 몸도 어느 정도 준수한 결과를 얻는 게 힘든데, 애를 낳으면 걔도 이걸 해야 한다고 생각이 된다면 ‘빨리 애를 낳아야지’ 이런 생각은 잘 안들 것 같아요.

그나마 좀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이런 경쟁 사이클에 맞춰서 자녀계획을 세우거든요. 부부가 어느 정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될 때 아이를 낳아서, 어떤 동네에 살고, 어떤 교육을 제공하고 이런 식으로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건 이렇게 사이클 계산을 해보니까 견적이 안 나온다는 거잖아요.
Q. 때가 되면 대치동, 목동으로 이사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죠.
근데 이걸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애초에 우리가 그렇게까지 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인가? 루소나 존 롤스 같은 철학자들도 이런 고민을 했는데, 이 경쟁이 가끔은 굉장히 인위적인 희소성 때문에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대학 서열도 조금은 그런 면이 있잖아요. 물론 이 대학 가면 조금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식의 인식은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 있지만, 한국처럼 정말 대학 하나하나, 그 안에서도 학과 하나하나가 딱 서열이 정해진 것 같은 곳은 찾기 힘들어요.

이런 서열이 실재하는 어떤 차이를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위계가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즉 합당한 희소성, 합당한 서열화인가, 아니면 인위적이고 불합리한 그 무엇인가가 고민되는 그런 위계와 서열들이 우리 사회 도처에 있는 것 같아요. 그걸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출처 : SBS 뉴스
Q. 입시 제도가 그중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조지프 피시킨이라는 정치철학자는 『병목 사회』라는 책에서 내가 통과해야만 원하는 다른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의 지점을 ‘병목’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피시킨은 많은 사회에서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나머지 인생의 전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대학 입시가 하나의 병목이라고도 언급합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면이 없지 않죠. 저출생·고령화로 인구가 줄고 대학이 남아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요.

루소는 사람들이 때로는 없는 위계를 만들어내는 게, 그 위계를 원해서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나는 남들보다 낫다’라는 걸 남들이 인정해 줘야지 내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일종의 병든 형태의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거든요.
Q.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심리적인 측면과 사회경제적인 측면이 악순환을 거듭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격심하고, 특정 병목을 통과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되는 구조라면, 심리적으로도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강해진다는 거죠. 경제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나타날 수 있는 여러 폐해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벽한 해법은 없겠지만, 내가 공부를 얼마나 잘 하든 상관없이 이 사회 시민으로서는 평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교육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Q. 사람들이 인위적인 서열, 희소성을 만들어낸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아이들이 줄면 대학 가기는 쉬워지고 입시 스트레스도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저출생과 무관하게 그런 서열화는 계속 존재할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죠. 만약 사람들이 자기애를 확인하는 방식이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인정받느냐에 달린 거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온갖 서열들을 만들어내겠죠. 몇 년 전에 출간된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가 쓴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인공지능과 관련한 공상과학 소설인데 아주 소수의 몇 개 대학만 남고 아이들은 별로 없는 가까운 미래 사회가 배경입니다. 아이들은 목숨을 건 유전자 편집, 즉 ‘향상’을 하지 않으면 대학에 갈 수 없는 걸로 그려져요. 그렇게 인위적인 희소성을 만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서 명품 가방도 인터넷에서 보면 그 안에서도 등급을 나누잖아요. 루소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희소성, 위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연스러운 종착점이 없어요. 언제나 그 위로 위계를 끝없이 세울 수 있어서 문제가 더 심해집니다.
Q. 이민 얘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네요. 근데 이민자들이 오면 그 위계 속에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 차등화 문제도 그런 문제 아닌가 싶고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최저임금 제도에 찬성하면서도 최저임금 차등 입장을 정당하게 견지하기는 논리적으로 어렵습니다. 만약에 자신이 그런 입장에 계속 끌리고 있다면, 그것은 내 안에 나도 모르던 어떤 위계상의 전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꼭 같은 처우를 해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그런 위계가 내 안에 있던 게 아닌가 한 번 고민을 해봐야 하지 싶습니다.

또 한 가지 점검해 볼 사안은 ‘인종 정의’(racial justice)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문제의식이 없는 부분인데, 이게 꼭 인종이 아니더라도 예컨대 아시아 내에서도 어느 지역이냐를 구분하고 경계 지으려는 경향도 포함합니다. 그간에는 이런 성향을 갖고 있어도 노출될 일이 없는 사회였다면 앞으로는 여기에 대한 감수성을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런 계기가 생기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송 교수는 이민 문제에 대해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우리나라 개발자들 중에 한국은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며 ‘텍사스 가서 살래’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텍사스 가면 개발자들이 돈도 많이 번다고 하고요. 그렇다면 예를 들어 인도 개발자들이 텍사스 가지 서울에 오려고 할까요?”
그러면서 우리 고학력 고숙련 노동자들도 외국 나가겠다는 상황에서, 해외 고숙련 노동자들을 어디서 얼마나 데리고 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송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래서 고학력이든 저학력이든 한국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지 정책 입안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이민자들도 좀 더 용이하게 모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바뀌지 않으면 저는 그 어떤 이민정책도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글: 문준모 기자 moonje@sbs.co.kr
SDF를 만드는 사람들
이정애 기자 : 다양한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 믿으며 SBS D포럼을 총괄 기획해 오고 있습니다.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 시사고발프로그램 ‘뉴스추적’ 등을 거쳤으며 2005년부터 ‘미래부’에서 기술과 미디어의 변화, 그리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떻게 다르게 같이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해 오고 있습니다.

문준모 기자 : 정치, 외교, 사건 등을 취재하다 SBS D포럼 20주년 준비팀에 함께 하게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과 현실적 해법이 담긴 포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박석철 전문위원 : 미디어 정책과 산업 변화에 대한 대응 업무를 주업으로 하다 SBS D포럼을 기획하는 미래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다가올 미래, 사람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고 그 의미가 SDF에서 구현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혜미 기자 : 2008년부터 경제부, 사회부, 뉴미디어 분야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써왔습니다. '번아웃'을 경계하고 일상 속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살고 있습니다.


김은비 작가 : 시사, 교양, 예능, 웹콘텐츠 등을 구성해왔습니다. 20주년을 맞은 SBS D포럼 역시 재밌고 의미있게 준비해보겠습니다.

이유원 작가 : 보도, 시사, 교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이야기를 듣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지구, 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SBS SDF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살고 싶어지는 사회를 꿈꿉니다.


최성락 피디 : 오늘에 안주하지 말고 내일을 요리하자! SDF의 도전에 깊은 맛을 불어넣고있는 PD입니다.

박준석 프로그램 매니저 : Welcome to the home of feel-good thinking! SDF의 글로벌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임세종 촬영감독 : 현재 SDF 팀의 촬영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협업을 중요시하는 프리랜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신소희 아트디렉터 : SDF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공감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제 손이 닿은 곳에서도 공감과 에너지가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송현주 마케터 : SDF의 SNS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채널과 콘텐츠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SDF의 지식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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